물질적 현상(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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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제 1
길상사 초기불교
김재성
1
사성제 : 총론
• 초기불교의 종합적인 논의 주제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교설은 사성제.
• 불교는 간단히 말하면 고집멸도(苦集滅道)의 네 가지 고귀한 진리(四聖
諦)에 대한 가르침.
• 부처님은 간단하게 “내가 가르치는 것은 괴로움(苦)과 괴로움의 소멸(苦
滅)이다”라고 말씀하셨다.
• 사제 또는 사성제에는 苦라는 말이 앞에 붙어 있다. 즉 괴로움(苦,
dukkha)과 괴로움의 원인[苦集, dukkhasamudaya], 괴로움의 소멸[苦滅,
dukkhanirodha],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苦滅道,
dukkhanirodhagaamini pa.tipadaa]이라고 되어있다.
• 이처럼 괴로움[苦]에 대한 고찰이 불교의 진리관의 근저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괴로움이란 무엇인가, 괴로움은 어떻게 발생하며, 어떻게 극
복되는가라는 문제제기와 함께 불교는 시작하고 발전해왔다고 할 수 있
는 것이다.
• 사성제의 가르침은 기본적으로 연기설에 근거하고 있다.
• 원인-결과의 법칙을 말하는 연기설의 입장에서 보면, 集(원인) – 苦(결과),
道(원인) – 滅(결과)의 관계.
2
초기불교의 총체적인 진리관
•
초기불교의 총체적인 진리로서 네 가지 고귀한 진리 : 고집멸도(苦集滅道)
붓다의 깨달음과 가르침은 다름아닌 ‘네 가지 고귀한 진리’로 요약됨.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고귀한 진리를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이 윤회의 굴레에서 헤매야만 했다. 비구들이여, 괴로
움의 발생의 고귀한 진리를 ... 괴로움의 소멸의 고귀한 진리를 ... 괴로움의 소멸
에 이르는 고귀한 진리를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그
렇게 오랫동안 이 윤회의 굴레에서 헤매야만 했다.
長部16 大般涅槃經 DN II, 90.
비구들이여, 이 네 가지 고귀한 진리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앎과 봄(如實知見)’
이 나에게 아주 분명하지 않았더라면, 비구들이여, 나는 천신, 마라(魔), 범천(梵
天), 사문과 바라문, 인간, 천인(天人)의 세계에 있어서, 위 없는 완전한 깨달음
[無上正等覺]을 깨달았다고 공언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비구들이여, 이 네
가지 고귀한 진리에 있어서 ‘있는 그대로의 앎과 봄’이 나에게 아주 분명하게 되
었기 때문에, 비구들이여, 나는 천신, 마라(魔), 범천(梵天), 사문과 바라문, 인간,
천인(天人)의 세계에 있어서, 위 없는 완전한 깨달음을 깨달았다는 확신이 나에
게 생겨났다.
相應部 LVI 11.『如來所說』 SN V, 422-3
3
불교의 현실인식: 신사빠 숲에서 1
•
신사빠 숲에서의 교훈 : 괴로움의 소멸에 유익한 가르침만을 설한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얼마나 핵심적 위치를 차
지하는 가는 신사파 숲의 메시지에서 다시 확인된다.
한때 세존께서는 코삼비(알라하바드 근처)의 신사파 나무숲에서 머무셨다.
부처님께서는 손에 신사파 나뭇잎들을 주워 들고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에 있는 신사파 잎사귀와 저 숲에 있
는 잎들과 어느 쪽이 더 많은가?”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손에 드신 잎사귀는 얼마되지 않습니다. 저편 숲에
있는 잎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렇다. 비구들이여, 내가 완전히 깨닫고서도 너희들에게 설하지 않은 것은
많다. 내가 너희들에게 설한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비구들이여! 왜? 내가 그
모두를 설하지 않는가? 그것들은 유익하지도 않고 청정한 삶에 꼭 필요한 것
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싫은 마음을 일으킴(厭離; nibbidaa ) 탐욕
을 멀리함(離慾), 멸진(滅盡), 적정( 寂靜), 뛰어난 지혜(神通智;abhi~n~naa )
완전한 깨달음, 열반으로 이끌어 주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내가 그것
들을 설하지 않은 이유이다.”
4
불교의 현실인식: 신사빠 숲에서 2
“그러면 비구들이여, 내가 설한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발생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멸진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멸진에 이르는 길이다. - 이것을 나는 설한다.
비구들이여! 나는 왜 이러한 진리를 설하는가?
이 진리들은 실로 유익하고 청정한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진리들은 싫은 마음을 일으킴 탐욕을 멀리함 멸진 적정 완전한 지적능력
완전한 깨달음 열반으로 이끌어 준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내가 이 진리들을
설하는 이유이다. 비구들이여! 따라서, 이것이 괴로움이고, 이것이 괴로움의
발생이고, 이것이 괴로움의 멸진이고, 이것이 괴로움의 멸진에 이르는 길임을
깨닫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느니라.” (상응부 SN V,437)
“나는 괴로움과 괴로움의 멸진만을 알려준다”. (dukkham ceva
pa~n~naapemi, dukkhassa ca nirodham).
어떤 붓다이든 발견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이 사성제일 수밖에 없으며, 이
사성제야말로 어떤 시대의 부처님 일지라도 한결같이 가르치실 전형적 가르침
이라 할 수 있다.
5
불교의 현실인식: 독화살의 비유
부적절한 질문(10 無記)과 불교에서 보는 현실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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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룽키야풋타여,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하자. 만일 세존께서 다음과 같은 문
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 않는다면, 나는 세존에게서 청정한 삶(梵行)을 닦지 않으리라.
세계는 영원한가 아니면 영원하지 않은가. 세계는 끝이 있는가 아니면 끝이 없는가.
영혼(생명)은 육체와 동일한가 아니면 영혼과 육체는 별개의 것인가.
여래(tathāgato)는 사후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가. 존재하며 존재하지 않기
도 하는가 아니면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여래가 그 사람에게 미처 다 설명하기도 전에 그 사람은 죽음을 맞
이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독이 잔뜩 묻어 있는 화살에 맞은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의 친구들과 친
척들이 그를 외과 의사에게 데리고 가려고 할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알지 못하면 나는 이 화살을 뽑지 않을 것이다. 즉, 나에게 활을 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바라문인가, 무사인가, 평민인가, 노예인가. 이름은 무엇이고 어느 종
족의 사람인가. 그의 키는 큰가 작은가 아니면, 중간 정도인가. 이 모든 것들을 미처 알기
도 전에 그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
말룽키야풋타여, 세계는 영원하다라는 견해를 지니고 있다하더라도, 아니면 세계는 영원
하지 않다라는 견해를 지니고 있다하더라도 .... 태어남이 있으며, 늙음이 있으며, 죽음이
있으며, 슬픔, 비탄, 통증, 비애 그리고 절망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苦)의 소멸이 바로
이 생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임을 나는 알게 되었다. 中部 63 말룽키야풋타 經 MN I,
431
6
명의 가운데 명의
• 붓다가 네 가지 진리를 설하시는 방법부터가 의사가 취하는 방식과 유사
하다. 의사로써 붓다는 먼저 병을 진단하고, 그 병의 원인과 발생 과정을
찾아낸 다음 병의 제거 방법을 검토한 후 처방을 내렸다. 이러한 방법은
인도의 의학체계를 따랐다고도 할 수 있다.
• 고(苦:dukkha)는 병이다(苦). 갈애(渴愛)가 병의 발생원인 또는 근본 원인
이다(集). 갈애를 없앰으로써 병이 제거된다. 그것이 치유이다(滅). 여덟가
지 성스런 길은 그 처방이다(道).
• 어떤 바라문이 붓다께 스승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붓다라고 불리우십니까
하고 물었을 때 붓다의 대답은 명확했다. 바로 네 가지 진리에 대해 완전
한 지혜를 갖췄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씀하셨다. 붓다의 대답은 이러하다.
• 나는 알아야 할 바를 알았고, 닦아야 할 바를 닦았고,
버려야 할 것을 버렸노라. 바라문이여, 그래서 나는 붓다, 즉 깨달은 사람
이노라. (숫타니파타 Sn 558 등)
• 알아야 할 것이란 지혜와 해탈이며, 닦아야 할 것이란 팔정도이고, 버려야
할 것이란 고의 원인(集諦)이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기 때문에 팔정
도에 의해 고의 소멸이, 고의 원인에 의해 고가 설해져 있다고 볼 수 있으
므로 사성제가 잘 설해져 있는 것이다.
7
괴로움의 고귀한 진리(1)
- 고성제 •
괴로움(苦, dukkha)의 정의 1 - 四苦八苦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고귀한 진리란 무엇인가. 태어남[生]은 괴로움이며,
늙음[老]도 괴로움이며, 죽음[死]도 괴로움이며, 슬픔, 비탄, 통증, 비애 그
리고 절망도 괴로움이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求不得苦]
이며, 싫어하는 대상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怨憎會苦]이며, 좋아하는 대상
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愛別離苦]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인간을 구성하
고 있는)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한 집착[五取蘊]이 괴로움이다.
長部 22경『大念處經 』 DN II, 305.
•
괴로움이란 간단하게 말해서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적 현상(色)과
정신적 현상(受, 想, 行, 識)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적 현상(色)과 정신적 현상(受, 想, 行, 識)인
오온(五蘊)과 집착(取)에 대한 이해가 괴로움을 이해하는 열쇠.
•
8
오온에 대한 이해
- 물질적 현상 (色) -
•
물질적 현상(色) – 四大와 四大所造色
“물질적 현상의 무더기: 네 가지 근원적인 요소(四大)와 그것들로부터 파생된 물질적 현상들(四大所造色).
네 가지 근원적인 요소(四大): 딱딱함의 요소(地界), 물의 요소(水界), 열기의 요소(火界), 움직임의 요소(風界)
中部 28경 象跡喩大經 MN I, 184
네 가지 근원적인 요소(四大)로부터 파생된 물질적 현상들(四大所造色)은 아비담마(論書)에 의하면, 다음의 24
가지 물질적인 현상과 성질로 되어있다. 즉, 눈, 귀, 코, 혀, 몸(五根), 형체나 색깔(色), 소리, 냄새, 맛, 남성의 기
관, 여성의 기관, (육체의)생명력, 정신의 육체적인 기반, 육체적 표현(몸짓), 언어적 표현(말), 공간, 몸의 경쾌
함, 몸의 무거움, 몸의 적응성, 몸의 성장, 몸의 지속, 늙음, 무상함, 영양분을 말한다.
•
상적유대경(象跡喩大經)의 이어지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이것들(四大)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내가 아니다. 이것들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
대로 알고 보아야 한다. 목재와 골풀과 갈대와 진흙을 재료로 해서 만들어진 한정된 공간을 오두막이라고 부르
듯이, 뼈와 힘줄과 살과 피부를 재료로 해서 형성된 한정된 공간을 ‘육신’이라고 부른다. ”
9
오온에 대한 이해
- 느낌(受) •
•
느낌의 세 가지
“비구들이여, 세 가지 종류의 감수작용이 있다. 즉, 즐거운 느낌(樂), 괴로운 느낌(苦), 무덤덤한 느
낌(不苦不樂)이 그것이다.”
相應部 XXXVI 1. 三昧經 SN IV, 204.
•
세 가지 느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지 못하면, 즉 지혜로서 느낌의 본질을 관찰하지 않으면. 즐거
운 느낌(樂)에서는 탐욕[貪]이, 괴로운 느낌(苦)에서는 성냄[瞋]이, 그리고 무덤덤한 느낌(不苦不
樂)에서는 어리석음[痴]이 생겨나게 된다.
•
연기법(緣起法)에서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갈애(渴愛, tanhaa)는 바로 느낌을 조건으로 생겨나기
때문에 느낌이 생겨나는 것을 정확하고 예리하게 알아차리지 못하면 바로 느낌은 탐진치의 세 가
지 근본적인 不善法(불선법)으로 연결된다. 이것이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다.
•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서 생겨난 느낌과 감정들을 자기 감정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데 이는
조건에 의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에 불과하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분명하게 알아차리
게 될 때, 그 감정들에 의해 마음이 부침하지 않고 평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10
오온에 대한 이해
- 인식(표상)작용(想) •
•
인식작용 여섯 가지
“인식작용이란 무엇인가. 여섯 가지 인식작용이 있다. 즉 형태나 색깔(色), 소리(聲),
냄새(香), 맛(味), 접촉(觸), 마음의 현상(法)에 대한 인식작용이 그것이다. ”
相應部 XXII 56. 取轉經 SN III, 60.
•
인식작용이란 마음에 어떤 이미지나 개념 등을 떠올리는 정신적인 작용을 말한다.
동전이 떨어져 있을 때, 동전의 동그란 모양이 먼저 파악되는 데 이 단계의 인식을
인식작용이라고 한다.
우리의 여섯 가지 인식 기관에서 각기 인식작용이 일어나는데 인식작용은 느낌(受)
과 형성작용(行)과 함께 발생하는 마음의 작용이다.
수행 중에 의식 중에 떠오르는 수 많은 이미지나 개념들이 있는데 이 가운데 많은
것들이 인식작용에 속하는 마음의 작용임을 알 수 있다.
인식작용도 인식기관과 대상의 접촉이라는 조건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생겨났다가
는 사라지는 무상(無常)한 현상이지만,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떠오르는 갖가지 생
각들과 이미지들을 마치 자신의 마음인 것처럼 집착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인식
작용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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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오온에 대한 이해
- 형성작용(行) -
•
•
형성작용(행)
형성작용: 여섯 가지 의지작용. 형태나 색깔(色), 소리(聲), 냄새(香), 맛(味), 접촉
(觸), 마음의 현상(法)에 대한 의지작용이다.
•
형성작용(行蘊)은, 한 순간의 의식에, 감수작용과 인식작용과 함께 현존하는, 수많
은 정신적 활동의 기능 또는 양상들을 의미하는 집합적인 용어이다.
형성작용은 아비담마에서 50가지로 분류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 7가지는 항상 작
용하는 마음의 기능이다. 나머지와 그것들의 결합 방식은 각각에 대응하는 의식의
성격에 따라 다양하다.
<正見經>(中部 9)에 의하면, 형성작용의 무더기 가운데 세 가지 대표적인 것은 의
지작용(思), 접촉(觸) 그리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作意)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시
이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형성의’ 요소인 의지작용을 들어, 특별히 형성작용의
무더기의 특성으로 한 것이며, 따라서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의지작용을 대표적인
예로 삼은 것이다 .
•
•
•
의지작용으로서의 형성작용은 우리의 행동을 잘 관찰하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
자신의 의지작용의 흐름을 분명히 볼 때, 그곳에는 ‘나’라거나, ‘나의 것’이라는
집착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12
오온에 대한 이해 - 의식작용(識) 의식작용(識)
“의식작용이란 여섯 가지 의식작용의 무더기. 눈의 의식작용(眼識), 귀의 의식작용(耳識),
코의 의식작용(鼻識), 혀의 의식작용(舌識), 몸의 의식작용(身識), 마음의 의식작용(意識)”
相應部 XXII 56. 取轉經 SN III, 58
•
의식작용은 사물을 식별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의식작용은 윤회의 주체이거나 ‘자아’가
아니라 인식기관과 인식대상이라는 조건에 의해 생겨나고 사라지는 현상에 불과하다.
•
“비구들이여, 내적인 눈(의 감각기능)이 온전하더라도 만약에 외적인 색(色;색깔과 형태)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을 경우, 그리고 그것에 응해서 주의력이 없을 때, 이 경우에 그것에
대한 (눈의) 의식작용은 생겨나지 않는다. 그리고 내적인 눈이 온전하고 외적인 색이 시야
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그것에 응해서 주의력이 없을 때, 이 경우에 그것에 대한 의식작용은
생겨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적인 눈이 온전하고 외적인 색이 시야에 들어왔으며, 그것에 응
해서 주의력이 있을 경우에는 그것에 대한 의식작용이 생겨나게 된다.”
中部 28 『象跡喩大經』MN I, 190
•
의식작용은 조건지워진 마음을 가리키는데, 우리는 이러한 의식작용을 ‘나’ 또는 ‘나의 마
음’이라고 집착한다. 실제로 부처님 당시에도 의식작용인 識을 윤회의 주체라고 생각하는
제자도 있었음을 상기 해야한다.
의식작용으로 無常(무상)하고 苦(고)이며 無我(무아)을 이해하고 ,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알 수는 있지만, 번뇌의 본질을 간파하여 끊어낼 수 있는 힘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지
혜와 구별된다.
•
13
오온과 오취온
五取蘊(오취온)은 五蘊(오온)에 대한 집착
•
•
•
오취온이 괴로움이라고 할 때, 그 이유는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오온에
대한 집착을 끊어 버린다면 바로 괴로움을 끊어 버리는 것이다.
아라한에게도 오온(과거 업의 결과)은 있지만 집착이 없다.
네 가지 집착(取) (1)감각적 욕망에의 집착(欲取), (2)잘못된 견해에의 집착(見
取), (3)계와 금기에 대한 집착(戒禁取), (4) 자아에 대한 집착(我論取)
감각적 욕망에의 집착은 감각적 욕망에의 갈애가 구체화되고, 굳어진 것.
잘못된 견해에 대한 집착이란 인과에 대한 부정, 업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지니고 그 잘
못된 견해를 고집하는 것.
 계와 금기에 대한 집착은 어떤 도덕이나 금기 조항을 지키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집착하는 것.
 자아에 대한 집착은 오온(五蘊)과 자아와 어떤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여 집착하는 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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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온을 자아와 동일시하는 것, 자아가 오온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오온이 자
아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아와 오온은 서로 독립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여
집착하는 것이 바로 자아에 대한 집착.
이러한 집착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순간순간 새로운 생존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
다. 윤회란 죽고 난 뒤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집착이 있을 때 항상 동반되는
순간순간의 사건. 이러한 집착을 끊기 위해서는 갈애를 끊어야 하며, 갈애를 끊
으려면 갈애가 일어나는 원인인 느낌을 올바로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14
괴로움의 고귀한 진리 2
•
괴로움(苦, dukkha)의 정의 2 – 세 가지 괴로움
괴로움을 다른 각도에서 이해하면 세 가지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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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苦苦; dukkha-dukkha)
괴고(壞苦 viparinaama-dukkha)
행고(行苦 sankhaara-dukkha). {청정도론 p. 499(PTS)}
고고(苦苦)란 본래 피할 수 없는 괴로움, 생로병사의 괴로움, 누구에게나 있는 육체적인
괴로움.
괴고(壞苦)란 좋은 상황, 즐거운 상황이 없어지면서 생기는 괴로움, 섭섭함 등입니다. 일
상 생활에서 많이 경험하는 괴로움이다.
마지막 행고(行苦)에 대한 이해를 해야 불교에서 말하는 괴로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
다.
행(行)이란 조건에 의해 생겨나 모든 현상을 말한다. 조건에 의해 생겨난 현상은 조건이
사라지면 없어져 버리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불안하고 안정되어 있지 못하다는 의미로
괴로움이라고 한 것.
행고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즐거움도 괴로움이다. 조건에 의해 생
겨난 즐거움은 그 자체로 조건지어져 있기 때문에 괴로움이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조건지워져 있는 모든 것은 바로 버려야 할 것들이지 자기 것이라고
집착할 대상이 아니다. 행고(行苦)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비로소 불교에서
말하는 괴로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생겼다고 할 수 있다.
15
행고(行苦)와 삼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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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고(行苦) 는 바로 오취온고와 일맥 상통한다. 모든 조건지워진 것은 괴로움이
라고 할 때, 오온 자체가 조건에 의해 존재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이다.
오온 자체의 괴로움은 행고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고, 오온에 대한 집착은 보
다 강한 번뇌에 기반을 둔 괴로움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조건에 의한 괴로움은 바로 법의 세가지 특성(三法印 또는 三法相)의 일체개고
(一切皆苦)임을 알 수 있다.
법의 세가지 특성
모든 형성되어진 것은 무상하다(諸行無常).
모든 형성되어진 것은 괴로움이다(一切皆苦).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실체가 없다(諸法無我)
增支部 III 134. AN I, 286.
형성된 모든 것들, 즉 조건에 의해 생겨난 모든 현상은 무상하고, 괴로움이라는
두 가지 특징은 다름 아닌 諸行(제행)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行苦(행고)를 설명
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무상하기 때문에 괴로움이라는 말은 변하기 때문에 안정되어 있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16
법의 세가지 특성 (三法印 또는 三法相)의 자각
오온의 무상 (無常), 고 (苦), 무아 (無我)
 물질적 현상(色) 감수작용(受), 인식작용(想), 형성작용(行), 의식작용(識)은 영원
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 이처럼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는 것들에 대하여,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
이다. 이것이 나의 자아(아트만)이다.’라고 간주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 그러므로 과거, 현재, 미래의 것이거나, 자신의 내부에 있는 것이거나 외적인 것이
거나, 거친 것이거나 미세한 것이거나, 저열한 것이거나 뛰어난 것이거나, 긴 것이
거나 짧은 것이거나, 모든 물질적 현상(色)에 대해서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
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아트만)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如實하
게) 알고 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모든 감수작용(受)... 인식작용(想)... 형성작용
(行)... 의식작용(識)에 대해서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
것은 나의 자아(아트만)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如實하게) 알고 보아야 한다.
相應部 XXII 59. 『五群比丘』SN III, 66-68
17
무아(無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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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無我; anatta)란 영원 불변하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없다는 것이지 일상적인
의미의 자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해해야 한다.
무아의 가르침이 잘못 이해되면 허무주의(단멸론)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
야 한다.
무아이기 때문에 윤회도 가능하고 깨달음도 가능하다는 것이 불교의 입장이다.
전체 세계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존재는 모두 다섯 가지 무더기에 의해 구성되어
진,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의 흐름이라는 점에 있어서만 실재적인 것이다.
이 흐름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 기억할 수 없는 시간에서부터 시작되어 우리가 죽은
후에도 끝없는 시간에 걸쳐 이어질 것이다. 조건이 있는 만큼 오랫동안.
위의 경전에서 설해진 바와 같이 다섯 가지 무더기는 분리되어 있거나 결합되어 있
거나 어떠한 방식으로든, 실재적인 자아의 실체 또는 영속적인 인간임을 구성할 수
는 없으며, 마찬가지로 그것들의 ‘주인’으로 이 다섯 무더기의 바깥에서 그 어떠한
자아도 영혼도 실체도 발견될 수 없다.
달리 말하자면, 이 다섯 가지 무더기는 자아가 아니며(無我) 또한 그것들은 자아에
속해 있지도 않다. 모든 존재의 무상함과 조건에의 의존성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형태의 자아에 대한 믿음도 환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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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無我) 2
• 우리들이 ‘수레’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은 축, 바퀴, 끌채, 몸체 등을 떠나서
는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또한 ‘집’이라는 말이, 여러 가지 자재들을 함
께 조립해 놓아 어떤 모양을 갖추게 되어서,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게 된 것
에 대한 단지 편의상의 명칭일 뿐이지, 그 자체로 존재하는 독립된 집이라
는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존재’니 ‘개인’이니
‘사람’이니 또는 ‘나’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들이 단지 변화하고 있는 오
온이라고 하는 육체적, 정신적 현상의 결합에 지나지 않으며, 그 자체에 있
어서는 실재적인 존재는 없는 것이다.
• 간단히 말하자면 이것이 모든 존재는 영원한 자아나 실체가 없다는 가르침,
즉 붓다의 무아(無我)의 가르침이다. 이 무아설은 다른 어떤 종교적인 가르
침이나 철학적인 체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 그 의미를 완전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추상적이고 지적인 방식에 있어서가
아니라, 끊임없는 실제적인 관찰을 통해서 가능하며, 이러한 수행이야말로,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필수불가결
의 조건인 것이다.
• 무아설은 실재적인 현상에 대해 철저한 관찰과 분석이 행해졌을 때 얻어지
는 필연적인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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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온을 즐기는 것은 괴로움을 즐기는 것
•
우리가 자신이라고 애지중지하고 살고 있는 육체적, 정신적 현상을 즐기는 것
은 다름아닌 괴로움을 즐기는 것이라고 붓다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물질적 현상(色), 감수작용(受), 인식작용(想), 형성작용(行), 의식작
용(識)을 즐기고 있는 사람은 괴로움을 즐기고 있는 사람이다. 괴로움을 즐기고
있는 사람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나는 말한다.”
相應部 XXII 29. 『歡喜』SN III, 31.
무엇을 웃고, 어찌하여 즐거워하는가. 끊임없이 불타고 있는 세상에서.
그대는 어둠에 둘러싸여 있는데 등불을 찾지 않고 있구나.
보라, 이 꾸며놓은 몸뚱이를. 상처 덩어리인 이 몸뚱이를.
병치레 끊일 새 없고, 욕망에 타오르고 견고하지도 영원하지도 못한 꺼풀.
이 몸은 늙어서 시들어 버리고, 깨지기 쉬운 질병의 둥지.
썩은 육신은 마디마디 흩어지고, 생명은 반드시 죽음으로 끝난다.
法句經 Dhp 1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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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苦에서 벗어나기에 적당한 때
• 지금까지 살펴본 괴로움의 고귀한 진리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였다면, 바
로 지금이 모든 형성된 것(諸行)을 싫어하여 탐진치를 버리고 괴로움에
서 벗어날 생각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오랫동안 생사를 거듭하면서, 괴로움을 겪어왔고,
슬픔을 겪어왔고, 불행을 겪어왔으며, 죽어서 묘지를 가득 채워 왔다. 그
러므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바로 지금이 모든 형성되어진 것(諸行)에 대
해서 싫어하는 생각을 내기에 적당한 때이며, 탐욕을 버리기에 적당한 때
이며, 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기에 적당한 때이다.”
相應部 XV 1. 『薪草』SN II, 178.
•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알 때, 우리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할 것이다.
괴로움을 즐거움인 줄 알고 산다면 누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 세상에서 말하는 즐거움은 바로 오온의 즐거움을 떠나 있지 않다고 한
다면, 붓다의 가르침을 통해서 근본적으로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삶
의 진정한 괴로움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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