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잡스 2학년4반 조현희, 김석현 1 *** ** 스티븐잡스의 초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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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잡스
2학년4반
조현희, 김석현
스티븐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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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잡스의 초창기
1955년 2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자마자 양부모 폴과 클라라에게 입양되었다. 양부모는
엄격한 기독교신앙을 가진 미국서부의 농부였다. 그의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군인이 되었으며 캘리포
니아 주 해안경비대에 들어가 경비정 기관사로 근무했었다. 전역 후 클라라와 결혼하였고 자동차정비, 할부금 수
금원 등의 직업을 가졌고 아이가 없자 스티브 잡스를 입양하였다. 잡스는 성인이 되어서 자신이 입양된 사실을 알
고 작가로 활동하는 모나 심프슨이라는 여동생과 대화 치료사였던 어머니와 정치학 교수였던 아버지의 존재도
알게되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양부모를 친부모로 여겼다.
이때 전자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동년배 빌 페르난데스, 5살이 많았던 스티븐 워즈니악(Steve Wozniak)을 만나 교류했
으며 스티브 잡스에게는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학교에서는 낙제생이자 독선적인 외톨이였지만 전
자적인 지식과 집념 그리고 유쾌한 성격은 비슷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당
시 미국 히피문화에 흠뻑 젖어있었다고 회고한다. 홈스테드고등학교를 마친 뒤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마약을 중단하고 새로운 이상을 찾아 동양철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1년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아타리(Atari)라는 전자게임회사에 취업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히피차림으로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수개월간 인도 북부 히말라야 일대를 여행하였지만 그가 기대했
던 내면의 정신적인 만족감을 얻지못한 채 미국으로 돌아가 아타리사에 복직하였다. 그는 컴퓨터 게임을 만들었
으며 이때 다시 워즈니악과 친분을 쌓았고 전자분야의 지식이 해박했던 그의 도움을 받았다. 사업적인 수완과 마
케팅 감각이 뛰어난 스티브 잡스는 천부적인 전자 엔지니어였던 워즈니악의 도움이 있어야만 그의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했고 각각의 장점을 합쳐 두사람은 1976년 컴퓨터(회로기판)를 제조하는 회사를 공동창업을 하였다. 당
시 회사이름은 스티브 잡스가 오리건 주의 선불교 수행을 하던 장소였던 사과농장을 연상하여 애플(Apple)이라고
지었다.
스티븐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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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잡스의 실패…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오랜동안 연인관계였던 크리스 앤과 사이에서 리사(Lisa)라는 딸을 두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친부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친자확인 소송에서 패소한 이후 리사가 친자임을 받아들였다. 또한 모순된 성
격과 인색함으로 어려운 시기에 힘이 되었던 친구들에게서 외면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태도와 생각을
바꾸지 않고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더욱 집중했다. 회사내에서는 매킨토시와 리사 컴퓨터를 개발하면서 애플사의
핵심 엔지니어와 경영진 사이에 반목이 심해졌고, 스티브 잡스는 이런 불화를 조화롭게 리드하지 못했다. 자신이
주도했던 리사 프로젝트에서 밀려나자 새로운 컴퓨터를 개발하는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 하지만 그를
믿고 따랐던 매킨토시 프로젝트 담당 엔지니어들은 노력에 비해 형편없는 연봉을 받는다는 불만이 고조되었고
스티브 잡스에 대한 배신감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1984년에는 IBM에 대항하여 매킨토시 컴퓨터를 선보이고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실패
한 리사 프로젝트팀과 파워게임이 벌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메킨토시 발표 후 얼마 동안의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
은 맥(Mac)에서 사용할 수 있는 소트웨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았고 판매는 급속하게 줄었다. 스티브 잡스의
독특한 스타일과 분위기와 함께 매킨토시에 매료되었던 사람들은 이제 불편함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1985년 1
월 19일 워즈니악과 함께 백악관에 초빙되어 레이건 대통령이 수여하는 국가기술훈장을 받았지만 워즈니악은 회
사를 떠나고 말았다. 마침내 스티브는 현실성없는 망상가이자 회사를 도탄에 빠뜨린 인사로 지목되어 1985년 5
월 경영일선에서 쫓겨났다.
•
애플을 떠난 뒤 넥스트(NeXT)社를 세워 세계최초의 객체지향 운영체제인 넥스트스텝(NeXTStep)을 개발하였고
1986년에는 조지 루카스 감독으로부터 픽사(Pixar)를 1000만 달러에 인수하였다. 차세대 운영체제를 갖춘 그래픽
전용 컴퓨터를 개발하여 의료업계에 판매하려고 시도했으나 두 회사 모두 수익을 못 내고 스티브 잡스를 위기로
몰았다. 그러나 픽사는 하드웨어 사업을 포기하고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면서 회생의 기미를 보이기도 하
였다. 1991년 3월 18일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로렌 파월이라는 여성과 결혼했으며 2명의 아이를 낳았다. 결혼과
자녀양육 문제를 두고서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지만 예전 모습과는 확연하게 변해있었다. 가정은 행복했지만 그의
사업은 점점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미국의 거부 로스 페로와 일본 캐논(Canon)사를 통해 투자를 받으며
겨우 버텨나가고 있었고 회생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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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의 멋진 복귀
1996년 적자에 허덕이며 새로운 운영체계를 원했던 애플이 넥스트 사(社)를 인수하면서 스티브 잡스는 13년만에 다시
애플로 복귀하여 경영 컨설턴트로 역할하며 4억달러 흑자를 내는 데 공을 세웠다. 또한 픽사는 존 래스터가 제작
한 제작한 토이스토리의 대대적인 성공에 맞추어 상장하여 거의 빈털털이에 내몰렸던 스티브 잡스를 단번에 억
만장자에 올려놓았다. 2006년에 월트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하면서 잡스는 월트 디즈니의 이사회 임원이 되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CEO로 복귀한 2년 동안 애플은 자본이 20억 달러에서 160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픽사는 연이은
흥행성공으로 애니메이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영화사로 기록되고 있었다. 한층 여유로워진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미디어인 인터넷과 접목한 새로운 제품개발에 눈을 돌렸으며 그 대상은 음악이었다. 그는 항상 제품의 모양과 색
깔을 결정하는 디자인에 매우 중시했다. 아이튠즈 개발에 이어 아이포드라는 MP3플레이어를 개발하여 세계적인
히트상품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는 이제 사업가에서 세상을 바꾸는 인물로 인지되고 있었다. 많은 청중들 앞에서 청바지에 검은색 셔츠로 연설하
는 모습은 바뀌어가는 세상의 서막을 알리는 행사로 각인되었고 사람들은 그가 만든 제품에 열광했다. 2007년 맥
월드에서 아이폰이 발표되고 전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으며 애플은 약 500억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특히
아이폰은 통신업계 전반을 뒤흔들어 놓았고 문화적 파급효과도 지대했다. 또한 2010년 발표된 아이패드라는 태
블릿 컴퓨터를 발표하면서 스티브 잡스가 주도하는 변화는 가속화되었다.
하지만 그는 56살이라는 나이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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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잡스의 전자기기들
스티븐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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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느낀점
나는 스티븐 잡스가 처음에는 모든 서민들처럼 어려웠지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고 발명해내고 생각해내고 해
서 많은 전자 제품을 출시 시켜 부자가 된 것을 보고 아무리 힘이 들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도 자기 자신이 열심
히 하면 모든 일이 반드시 성공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만약 스티븐 잡스 였다면 나는 차라리 포기 하고 말았을 것이다. 아니면 다른 일을 구해서 살거나 하지만 아쉬운
점은 스티븐 잡스가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56세라는 나이에 죽었다는 것이다. 만약 스티븐 잡스가 지금 죽지 않
았더라면 더 많은 아이폰이나 애플 사에 크나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느낀점은 스티븐 잡스는 정말로 대단하다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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