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_박정희

Report
인물다큐영화
제작제안서
靑年 朴正熙
저작권등록번호,제c-2013-015672호.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각본, 감독 김성수
주식회사 경춘
청년 박정희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기획의도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정의롭게 밝혀져야만 한다.
누가 진실을 묻어버리고 조국의 구국 영웅인 그를 감히 매도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는 초근목피로 연명해가며 초등학교를 다녔고, 학비가 없어서 국비공립학교인 대구사
범에 진학했으며,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는 허명의조선인으로서 일본의 황국신민이라는
족쇄를 차고 나라 없는 한과 서러움과 비분을 감추어야만 했던 시대의 불운아였었다.
그는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비천하고 거지보다도 못했던 가난과 조센징이라는 신분 때문
에 가진 속박과 하대 속에서 이를 갈며 공부했고, 기어이 살아남아 군인의 길을 선택했다.
그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이글거리며 타고 있는 숨겨진 소망이 있었으니 사색당쟁' 개인영
달의 이기주의와 매국역심으로 조선을 팔아넘긴 선조들의 대역을 심판하는 길은 선조들
을 원망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다시는 외세의 침략을 받지 않
는 강한 나라를 만드는 일과 자유롭고 풍요로우며 행복하게 잘사는 조국 ! 통일된 조선을
일구어내는 소망을 하늘에 고하여 빌고 또 빌면서 자신의 힘을 기르기 위해 자신을 내던
져 왔었다." 그러기에 그는 어떠한 난관에 봉착해도 항상 가슴으로 통곡하여 울면서 밖으
로는 단 한방울의 눈물도 내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결코 친일파가 될 수 없는 자랑스러운 조선의 아들이었다.!
그는 평화주의자였지 결코 공산주의나 좌익분자가 아니었으며, 자신이 꿈꾸어왔던 강하
고 자유롭고, 풍요로우며,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더 정진하고 일을 하려했을 뿐이지
장기집권야욕을 하겠다는 의미에서 정권야욕을 부린 것이 아니었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보다 더 확실한 조국건설의 목적에만 불타고 있었을 뿐! 결코 장기집
권 따위를 욕심내는 독재자가 아니었었다.
조국의 영웅 박정희는 그렇게 억울하게도 국민들의 가진 터무니없는 질타를 받으며 비명
에 갔지만 그의 생전의 놀라운 업적들은 조국 대한민국의 현실을 구축한 원동력으로 살아
지금도 아니 앞으로도 영원한 불멸의 씨앗이 되어 찬란한 꽃으로 거듭 피어날 것이다.
잘못하면 영영 묻혀버릴 이런 세기적이고도 역사적인 영웅 박정희의 참 실상과 진실을 낱
낱이 영상에 담아 진실을 규명하고 그의 애국애족심을 규명하며, 후세에 귀감이 되게 함은
물론, 온 국민이 애국충정의 진의를 알아 그를 진심으로 추모하고 기릴 수 있도록 하기 위
하여 영화로 만들어 전 세계에 대한민국이 낳은 구국영웅을 널리 알리려 함이다. 이 영화
는 국가적인 중대한 제작목표일 것이며, 사장되어서는 절대로 안 될 진실규명이라는 그런
의미에서 반드시 결단코 누군가는 만들어야만 한다는 것이 이 제안서의 절박한 기획의도
이다.
각본, 감독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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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줄거리(Plot Story.)
• inst‘ 1910년8월 국권피탈 후 7년째인 1917년의 일제치하의 다양한 일제만행들이
소개되다가 flash cut. 제1차세계대전. 5월29일 미국 에서는 ’존F케네디‘가 태어나고,
11월14일에는 조선의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 초라하기 그지없는 초가집 한 방에
서 박정희가 출생 한다.
• 갖 낳은 핏덩이 박정희를 보며 서러운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 백남 의. 회상하면, 큰
용이 어머니의 몸을 감아 돌아 놀라 기겁을 하며 깨어나는 어머니'는 찢어지는 가난
때문에 박정희의 출산을 포기하 고 하늘에 계신 조상님들에게 용서를 빌며 언덕에서
굴러 유산을 하 려하나 이를 발견한 장남 동희가 어머니를 업어다 안방에 눞히고 아
버지 박성빈도 가족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가난한 집안형편을 탓 하며 비탄에 잠기
고, 혼절했다가 깨어나보니 유산이 안된 것을 안 어머니는 다시 간장을 바가지로 퍼마
시며 유산을 하려고 이를 악문 다. 아버지를 비롯한 아들들은 이런 어머니를 눈물로서
만류하고 그래도 유산이 안되자 이번에는 집 돌담장 위에 올라가서 태아에게 미안하다 용서하
라 통곡하며 뛰어내려 몸이 상하는 지경이 되던 때……
• 그렇게 막 태어난 핏덩이 박정희를 살피며 몸이 온전한 것을 보고 안심하며 눈물로
껴안으면, 아버지와 아들들은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거라며 어머니를 안심시키느
라 애를 쓴다.
• 그렇게 태어난 박정희가 3살이 되었을 무렵인 1920년9월28일.
일제는 유관순을 끔찍하게 죽이고, 독립투사들을 잡으면 모든 고문 방법들을 동원하
여 남자의 생식기를 자르고, 여자의 자궁 속에는 뜨 겁게 달군 나무 몽둥이를 집어넣
는 등 악독하게 조선인들을 고문하 며 죽여가고 있었으며 ………
• 이런 상황 하에서 일제강점기 14년째인 1924년4월 박정희는 맏형 동희가 정희의
학비를 대겠다는 고집으로 9살 늦은 나이로 구미보 통학교 제11회생으로 입학한다.
• 일제강점기 21년째, 박정희 15세때 (지방신문 기자생활을 하는 셋째
형 박상희가 사다준 검정고무신 을 아끼려고 두켤레의 짚신을 갈아 신으며 학교 앞에
이르러서는 품었던 고무신을 꺼내 신고 들어가고 하학할 때는 아이들이 없는 곳에서
다시 짚신으로 갈아 신는 어린 박정희를 숨어서 지켜보고 눈물을 흘리는 셋째형 박상
희의 모습.
• 박정희는 갈등했다. 일본선생은 학생들에게 조선은 일본과 합방을 해서 없어져버렸
고 이제는 일본천황의 신민이 되었으며 조선이 곧 일본이라고 가르쳤으며, 조선선생
은 지금은 조선이 일제의 강점하에 있지만 언제인가는 독립하여 조선을 되찾을 때가
있을 것이라는 것 이며 그러므로 조선의 민족혼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
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만 해도 그렇다. 일본선생은 박정희를 부를 때 복세이끼로
호칭했고, 조선선생들은 박정희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각본, 감독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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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그러나 어린 박정희가 볼 때는 현재 조선이라는 것은 말로만 있는 나라이지 실제의 나
라는 없다는 것이 현실이었고, 일본인들은 조선 인들을 무조건 무시하고 있었음으로
조선은 언제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는 요원한 일이었다.
• 박정희는 집이 너무 가난하여 점심 벤또(도시락)를 못 싸갈 때가 태 반이었고, 그 때
는 아이들 몰래 산으로 가서 산골 물을 밥 대신 들 이키기 일수 였었고……
• 집에 돌아와서 깡보리 한줌에 비름나물과 고추장으로 비빈 밥을 어 머니와 함께 먹
을 때도 어머니는 비름나물이 더 좋다면서 아들 박정 희에게 보리밥을 다 퍼주고 당신
은 비름나물만 먹는 일이 허다 했었 으며 ……
• 하학 후에는 나무도 하고……
•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싺일꾼으로 온갖 농삿일에 불려 다녔다.
• 1932년 16세의 박정희는 구미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졸업 후 선생이 되면 평생토록
밥을 굶지 않아도 된다는 가족들과 선생님의 말에 피 눈물을 흘리며 열심히 공부를 해
서 그 입학이 어렵다는 대구사범학 교 심상과 제 4기생으로 합격을 하게 된다.
• 가난 때문에 박정희가 낙방하기를 빌던 어머니는 큰 근심에 잠기고……
아버지는 자신의 무능을 비관하여 술을 마시고 산에 올라 조상들에 게 원망을 퍼부어
대는데……
• 구미보통학교는 이와 반대로 개교 이래 최초로 대구사범학교에 합격 한 박정희를 둘
러싸고 무슨 영웅이라도 되는 양 박병철 선생은 박정 희를 안아 돌리며 김득명(박정희
6학년담임)과 함께 운동장에서 기 뻐 어절줄을 모르고 정희의 급우 한성도. 남윤수.
박재룡등도 펄펄 뒤며 정희를 축하해준다.
이 광경을 교사실 창을 통해 내다보고 있는 일본인 교장과 일본인 선생들도 만면에 미
소를 띠우고……
교장 - "복세이끼학생 대단하므니다. 우리 구미보통학교 개교이래 대구사범 합격한
학생 복세이끼가 최초이므니다!"
• 형 박상희는 이런 동생의 모습을 지켜보고 감격하여 그만 목놓아 엉 엉 울고 있었다.
• 기념으로 동생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상희. 생전 처음먹어보는 아이스크림에 매
료된 정희는 다먹고 남은 아이스크림을 담는 고깔형 의 과자그릇을 아이스크림장수에
게 돌려주자 아이스크림장사는 그 그릇은 과자이고 아이스크림과 함께 먹는 것이라고
설명하자 형 상희는 박장대소하고 ……
• 가난 때문에 정희의 낙방을 빌던 어머니는 큰 근심에 잠겨버리고 ……
각본, 감독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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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 박정희의 진로를 놓고 가족들이 가족회의를 연다. 박정희는 전 학년 학비가 국비로
지원되는 공립 사범학교임에도 불구하고 기숙사비와 기타 문구, 서적비, 등 때문에 도
저히 진학을 포기하지 않으 안 될 상황. 박정희가 에서는 유일한 보통학교출신이었고
지방신문기자로 있는 삼남, 정희의 형 상희가 자신이 정희의 뒷바라지를 하겠으니 모
두가 서로 힘이 되면 조금씩 보태달라며 강력하게 막내 정희라도 훈도(선생)가 되게
해야 집안에 빛이 될 거라며 나서는 바람에 정희 는 대망의 대구사범학교 심상과 4기
생으로 입학을 하게 된다.
• 한편 국제정세는 (한족, 만주족, 조선족, 몽골족, 일본족이 합하여 만 주국(현재의 중
국)을 세워. 쇼와7년' "만주국"의 대동원년을 맞는다. 만주국이 선 이 3월에 정희는 대
구사범학교에서 입학식을 치른다.
• 이 해 9월19일에는 한'중연합군이 일본군과 대적하여 제1차 쌍성보 전투가 벌어지
고, 10월10일에는 이봉창이 히로히토 천황에게 폭탄을투척하였으며, 12월9일에는 윤
봉길이 가나자와육군형무소에서 사망한다. 이 소식을 들은 대구사범 심상학과 4기생
들은 박정희를 중심 으로 구국열을 불태우며 조상들이 잘못하여 국권까지 피탈당한
것에 비분강개하면서 나라에 힘을 기르지 아니하고 오히려 당쟁으로 나라를 망친 것
을 한한다.
• 대구사범의 일본인선생들도 한결같아서 한일합방으로 이제 조선이라 는 나라는 없
어지고 조선의 모든 백성들은 일본천황의 신민이 되었 다며 학생들을 세뇌시키기에
급급했다.
• 그러나 조선인 선생들은 암암리에 비유와 은유로 조선의 얼을 되살 리려고 정신교육
을 강화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으며, 그러다가 교 직을 파면당하고 쫒겨나면서도 "백
의민족 조선이여 영원하라! 침략 자 일본은 천벌을 받을 것이다!" 라고 소리치며 교정
을 떠나갔다.
• 교련시간에 박정희는 이를 악물고 마음속으로 웨쳤다. "바로 이것이 다! 강력한 군대
가 있었었다면 조선은 결코 일본에게 침략당하고 국권까지 피탈당하지 않았을 것이며,
이렇게 강점당하지 않고 노예처 럼 지배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박정희는 비로서 자신이 가야할 길이 바로 군인의 길이라는 것을 절 감하며 군사훈련
의 기초인 교련에 혼신의 힘을 다 기우려 집중했다. 교련배속장교인 아리가와는 학생
들 중 유난히도 교련에 우수한 두각 을 나타내는 복세이끼를 편애하고 있었다.
• 정희의 형 상희는 대구에 있는 지방신문 기자가 되어 대구로 직장을 옮겨 더욱 자주
정희를 만나며 있는 힘을 다 기우려 돌보아준다.
• 1934년 박정희18세, 어느새 대구사범 3학년의 여름방학. 7월20일. 대구 달성군청
사앞 문구점 근처에서 자전거에 받쳐 쓰러지던 정희가 마침 지나가던 경북고녀생 이
정옥을 모르고 덥쳐 함께 쓰러진다. (나이는 정희보다 3살아래.) 정희는 이정옥에게
단번에 빠져들고 만 다. 정희의 첫사랑은 이렇게 시작된다.
각본, 감독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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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 정희의 둘재 형 무희는 지난 1923년 합의이혼한 이래 12년만에 송씨부인과 재혼을
했고, 송시부인은 인근에서는 제일 바느질솜시가 좋아 싹바느질로 번 돈을 정희의 학
자금에 보태어 집안에서 큰 사랑 을받게된다.
• 1935년6월2일 일요일. 정희는 4학년 이정옥은 3학년.
만주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정희는 오랜만에 이정옥을 만나 수학여행 에서 사온 "토무
" 한쌍을 선물한다. 정옥은 부유한집안의 딸이었고 정희는 그야말로 거지보다도 더 구
차스러운 가난한 자신의 형편을 늘 … 느끼며 갈등하고 또 갈등하며 어느새 매사에 자
신감을 잃고 앞 서 나서지 못하고 자신의 의사를 감추는 그런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정희는 이를 악물며 자신은 반드시 가난을 이겨내고 성 공하겠다고 다짐
을 하면서 이를 갈았다.
• 7월 상희는 대구기자직장이 폐하여 다시 구미로 돌아가 구미지방신 문의 기자가 된
다. 형이 곁에 있어 참으로 든든했고 큰 힘이 되었던 정희는 이제 다시 외롭고 고독한
홀로서기가 시작된다.
• 4학년 말 - 일본 니니로쿠니켄 일본육군대 항도파 청년장교들이 국 가 개혁을 기도
하여 구데타를 일으켰으나 …… 교련배속장교 아리가와 와 일본구테타의 실패의 원인
을 놓고 정희는 대담을 한다. (추후 5.16혁명에 참고가 됨.)
• 1937년. 미나미지로 조선총독은 조선을 일본의 전쟁수행을 위한 병 참기지로 삼고,
조선인들을 여러 각도로 옥죄어 갔다.
• 일본 12'12사건 발생.
• 1938년.4월. 일본제국은 국가총동원법을 발동한다. 미나미지로 조선 총독은 조선
황민화정책의 일환으로 국체명칭을 내선일체'인고단련‘ 3대교육방침'을 실시하고, 황
국신민화를 더욱 옥죄어가며, 더불어 징병제의 실시, 4월부터 조선교육령제, 성씨개
명 강제령을 발동한다. 미나미지로 조선총독은 5학년 졸업반인 정희는 2학기 여름방
학 때 부모의 강요에 의해 3살차이의 1920년생 김호남과 결혼을 하나 초야를 치르고
난 후 곧바로 후회를 한다. 김호남은 정희를 싫어하고 정희도 김호남을 싫어하게 된다.
(서로 원수보다도 더 싫어하는 이유들 …)
미나미지로 조선총독은 성명을 발표,
1/ 우리들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2/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폐하에게 충의를 다해야 합니다.
3/ 우리들은 일치단결하여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이에대한 조선인들의 반응은 오히려 더 강한 항일운동으로 번져갔 다.
• 결혼 달포 뒤 추석 때 처가동리에서 들은 이야기가 정희로서는 충격 으로 다가왔다.
각본, 감독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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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 1939년.3월. 드디어 5년간의 학업을 끝내고 정희는 대구사범 심상과 4기생으로 졸
업을 한다. (졸업생 70명)
• 정희는 대구교육청의 장학사 모리가네이치가 전해주는 발령장을 받 고 ……
• 정희는 학교근처에 하숙을 정하고 문경보통학교 3학년담임으로 첫 부임을 한다.
• 처 김호남은 정희의 첫 딸을 낳는다.
• 미나미지로의 강령에 따라 박정희가 선생으로 있는 문경보통학교의 이름이 "문경서
부공립심상학교"로 개명이 되고, 정희는 4학년 남녀 합반의 담임으로 발령을 받는다.
• 정희의 뇌리 속에는 어떻게 하면 군인이 될 수 있을까?로 가득 차 있던 판에 여름방
학에 만군에 소속되어있는 강재호상위(대위)가 대 구에 들른다는 것을 알고 찾아가서
자신의 심경과 형편을 털어놓고 간절하게 도움을 청한다. (당시, 만군 지원제한연령은
20세인데 박정희는 당시 22세로 지원자 격 미달이었었고, 미혼자여야 했으나 김호남
과의 혼인신고사실이 있 었기 때문이었다. 호적등본은 그런대로 면서기로 있는 친구
남윤우 를 통하면 결혼하지않은 것으로 발급받을 수가 있었다.) 강재호상위는 박정희
가 죽는한이 있더라도 군인 장교가 되겠다는 굳 은 신념을 안 후 어떻게든 도움이 되
어주겠노라며 만주신문에 호소 하는 언론플레이도 한번 생각해보라고 한다.
• 정희는 수험자격을 인정해 주십사 하는 간곡한 호소문과 함게 혈서 를 동봉하여 만
주신문사로 보낸다.
• 만주국 신경에서 발행되는 만주신문은 박정희의 혈서내용과 함께 그 의 간곡한 청원
편지를 신문에 대서특필! 보도하고 만주의 군 관계자 는 물론 만주국민들도 이를 감격
하여 화젯거리가 된다. 이렇게 하여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의 입학시험참가를 허락받
게 된 다.
• 만주군관학교로 가기 위하여 형 상희와 창시개명을 하기위한 의논을 한다.
•1939년. 9월. 28일. 일제강점기 30년째. 아리마교장을 설득하여 휴 가를 내고 만주
군관학교 입시를 치르러 문경을 떠난다. 기차가 신의 주를 거쳐 신경으로 향할 때에
열차 안은 살벌한 검문으로 숙연해진 다. 박정희는 검문을 받지만 오히려 검문헌병에
게 대우를 받으며 무 사히 신경에 도착하여 –
• 인력거를 타고 제3독립수비대 사령부 아리가와대좌가 근무하는 곳으 로 간다.
• 아리가와 대좌는 제자인 박정희에게 추천서까지 써주고 … 시험에 응 시한다.
• 시험을 치른 박정희는 즉시 귀국한다.
각본, 감독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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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그리고 12월.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합격통지서와 함께 강재호의 편지를 받는다.
박정희는 240명의 응시자중 석차 15등이라는 우수 한 성적으로 합격을 한 것이다.
• 1940년. 박정희와 함께 만주군관학교에 합격한2기생은 모두 11명. 이병주, 이한림,
이재기, 김원기, 안영길, 강창선, 이섭준, 김재풍, 김묵, 이상진 이었다.
• 2월11일 기원절 봉축행사에 맞추어 6개월 이내에 조선인 전부의 이 름을 일본식으
로 바꾸도록 명령한바 박정희는 상희와 협의하여 자신 의 이름을 "복세이기"에서 高
木正雄 즉 "다카기마사오"로 바꾼다.
•박정희는 3월24일부터 봄방학 직전까지만 수업을 한다는 공식 통고 와 사표를 미리
제출해둔바 있었다. 부모 형제 친구들과 미리 인사 를 나눈 ……
•박정희는 조선인 선생들과 조촐한 송별연을 벌이고 4월4일 만주군관 학교 입교일에
맞추어 입교한다.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한지 얼마 안되는 4월15일 만주군관 학교는 만주육군
사관학교로 명칭이 바뀐다.
•훈련 중 어머니와 형, 아내에게 유서를 쓰고 ……
•7월29일~8월4일, 일주일 특별방학에 귀향. 고향을 방문하고, 문경의 옜 하숙집에도
들리고 옜 동료선생들도 만나며, 아내 김호남도 만난다.
•그리고 귀대하여 1년 선배인 최창윤에게서와 방원철에게 호된 "셋사 "를 당한다. 군
대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집단이고 상명하복이 얼마 나 철저한 것인가와, 계급의 높
음이 얼마나 큰 힘인가를 깨달았다.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그렇게 개같이 맞았던 것이
다.
•1941년. 세계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전란에 휩싸이고 ……
•6월1일 만주국도 전쟁이 덮쳐든다 ……
•6월22일 독일이 소련을 공격하고 ……
•10월18일 일본은 극비리에 진주만습격계획을 짠다 ……
•그러나 훈련병인 박정희는 동료 이병주, 이상진과 함께 중국인 거리 를 거닐며 여유
로운 외출을 즐기고 있다.
•무명의 중국인 관상쟁이에게 정희는 자신의 운명에대한 이야기를 듣 는다.
각본, 감독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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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 정일권헌병 집에서 최남근을 만난다. 거기서 박기병하사도 만난다.
•그리고 "간노히로시"의 국제정세예견. (훗날 5,16의 바탕지식이 됨.)
•1942년3월. 박정희 26세. 만주육군사관학교 예과 2기 수석졸업(은 상 배수자) 부의
황제를 대신한 시종무관으로부터 금시계를 하사받는 다. (박정희는 일본계와는 별개
로 만주계 240명중 수석이었음.)
• 박정희는 소위계급을 달고 다이스키생활 6개월을 위해 하얼빈에 있 는 관동군보병
제30연대 177부대 일명 (高田)부대에 배속된다. 여기서 정희는 만군의 실상을 알게
된다.
•박정희는 어디에 가나 어느 때나 불시에 떠오르는 첫사랑 이정옥의 환상 때문에 괴로
웠다.
• 그리고 정희는 일본육사 지원을 위해 일본으로 간다.
• 일본육사 입교 전날 동경에 유학와있는 왕학수를 만나 동창들의 소 식들을 듣는다.
• 10월5일. 정희는 일본육군사관학교 57기생으로 입교한다. 일본육사에는 만주육군
사관학교 1기생중 이주일, 박임항, 최창언, 김민규, 최창윤, 조영원, 김영택, 이섭준,
김재풍등이 있었고 - 2기생은 한영식 등 30여명이 입학을 했다.
• 박정희는 다카기마사오라는 이름이 아닌 "오카모도 미노루"라는 이 름으로 개명하
여 일본육사에 입교했다.
• 1943년3월1일. 일본은 조선에대한 징병제를 공표.(8월1일부터 시행)
이제는 조선인들의 지원을 강요하기에 이른다.
• 정희의 일본육사 훈련과정 이모 저모 –
• 1944년4월22일. 정희는 개명한 "오카모도미노루"라는 이름으로 일 본육군사관학교
제57기생 졸업. (졸업생, 1,700명중 일본인1,550명. 만군계150명. 미얀마계와 인도
계4명.) 박정희는 일본군 고등무관 소위가 된다.
• 그리고 귀향! 붉은 테 튀에 금빛별을 붙인 장교모자. 양가에 붉은 줄 을 친 한가운데
금빛별을 단 소위계급장. 긴 가죽군화에 은빛 긴 칼 을 찬 모습으로 4월말경 관부연락
선을 타고 조선으로 향하면서 박정 희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왜 우리의 조국 금수강
산조선 나라를 왜국에 침략당하고 강탈당하 여서 나는 조선인이면서도 조선인으로 살
지를 못하고 엉뚱한 일본국 의 일본 군인이 되어야만 했던 것일까?"
각본, 감독 김성수
- 9 -
청년 박정희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그랬다! 치욕적인 조선의 모습이 모두 조상들의 업보 탓이었다는 생 각에 자신도 모
르게 치를 떨고 있었다. 노예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 으며 일본인들의 눈치를 보며 찢
어지게 가난하여 초근목피로 연명하 며 피눈물로 살아온 자신의 걸인보다도 못했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바다 위를 스쳐지나간다. 사색당쟁' 탐관오리들의 치부와 매국'
나라 와 국민을 생각지 않고 개인의 이익과 치부에만 급급했던 선조들의 그 치졸하고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이고 탐욕적이었던 매국적 작태들 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고 있
었다. 정희는 자신도 모르게 혼자 뇌 까리고 있었다.
"아 아 - !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내 조국 조선을 내 손으로 다시는 외세의 침략을 받지
않는 강한나라! 국민들이 자유롭고 풍요하며 행복하게 잘사는 나라 ! 통일된 단일민족
의 나라로 만들고 싶다!"
라고 –
• 나름 금의환향한 그는 대구에서 동기생인 이영원을 만나고 • 대구사범 교련교관 고토요이치를 만나고 • 박병철선생을 만나 첫사랑 이정옥이 시집을 갔다는 소식을 듣고 • 고향의 가족들을 만나보고 • 4월말, 박정희 이한림 이섭준 김재풍등은 견습군관이 외어 임지배정 을 받기위해 만
주육군사관학교에 귀임신고를 한다.
• 이들은 관동군 635부대에 배속되어 2개월간 혹독한 마감훈련을 받 고 • 신경의 만주군육군사관학교로 가서 2주교육 수료 후 현지부임을 받 는다.
• 1944년 중순. 만주군 소위가 된 박정희는 열하성 홍륭현의 삼도하 근처 반벽산기지
로 배치를 받는다.
• 만주군 제5관구 관할 승덕본부 혁모협 육군중장이 사령관.
• 8단장 당제영 상교, 일본인 시모노후쿠다로 대위의 2종부관으로 부 임한 박정희.
(예하부대 작전하달 단기관리업무) (만주군 보병 제8단(연대급) 사단병력 약 3,000여
명.)
• 1945년. 일제강점기 36년째.
• 3월 - 미 공군 B-29폭격기 도쿄대공습.
• 4월 30일 - 아돌프 히틀러와 부인 에바 브라운 자살.
각본, 감독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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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 7월 16일 - 미국이 플루토늄을 이용한 핵실험에 성공.
• 8월 9일 오전 11시 2분 - 미국이 일본 나가자끼에 핵폭탄 투하.
• 8월 15일 - 일본이 미국에 항복, 동시에 조선(한국)이 광복(해방).
• 박정희는 만군중위 때 만주에서 조국광복을 맞이한다.
• 중국 북평에서 새광복군에 가입.
• 신경비행대 군교선배 최창륜중위, 문용채 ……
• 남조선국방경비대 창설.
• 1946년4월29일 …… 군용선 타고 당고항에서 부산항으로 귀국.
• 이병주(만주군관학교때 선배이며 동창인)의 제의는 해방된 조국의 경비사관학교 2
기생 시험(5월)에 응시하자는 제의.
• 지옥화 되어버린 조국의 산하 이모 저모.
• 귀향 후 바로 위 누나 박재희와의 상봉.
• 아내와 딸 만나고 ……
• 어머니와 형들 상봉 ……
• 박상희의 동태.
• 황태성.
• 좌익의 거센 바람 속에서 ……
• 권상하.
• 좌익들의 거센 유혹.
• 음악부장 이응수.
• 신현준의 편지.
• 하재팔, 표무원, 최남근. / 서울의 왕학수
각본, 감독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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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 9월24일 "남조선경비사관학교"(후에 대한민국육군사관학교) 2기생 입시 응시.
• 500명 지원자 중 박정희를 포함한 263명 합격.
• 10월1일. 박정희 생도시절에 …… 대구시위와 좌익사건 발발.
• 10월6일. 박상희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음.
• 당시의 군과 사회상황.
• 12월14일. 박정희 석차 3위로 육사2기 졸업, 군번 10116번.
• 고향으로 ……
•셋째형수와 조카 영옥'계옥'
• 셋째형의 신주를 모신 방에서 형과의 과거 회상, 초등학교부터 대구 사범 졸업전 형
의 도움 등 ……
• 74세의 어머니, 동희형과 무희형.
• 상희형의 부의 인명록을 넘겨받는 박정희. 이재복의 클로즈업. 이응수도 ……
• 1947년2월. 북조선인민위원회 수립.
• 3월1일. 남대문에서 좌'우익세력 집회도중 충돌. 38여 사상자를 냄.
• 제주 3,1절 발포사건 일어남.
• 9월27일 박정희 대위로 승진. 동시 조선경비사관학교 중대장으로 영 전함. 남로당
군사책 이재복이가 찾아온다.
• 내연의 아내 이현숙을 처음 만남. 박정희는 5기사관생도의 중대장이 됨.
• 최남근소령의 충고, 정의는 언제나 힘센자의 편이라는 ……
• 여름 야외기동훈련 후 좌익 이재복.
• 1948년1월23일. 이승만 남조선만의 단독선서 강조.
• 2월7일. 2'7사건발생.
각본, 감독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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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 2월8일. 조선인민군 창설.
• 제주 4'3사건 발생.
• 5월10일. 대한민국제헌국회 구성 위해 첫 국회총선. 국회의장 이승만.
• 7월17일.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됨. 존'하지 미 군정 폐지 공식선언.
• 7월20일. 초대대통령 이승만 선출됨.
• 이효와 그 부인의 중매로 명동 삼호정에서 이현숙과 정식 약혼 후 동거에 들어감.
• 무리한 훈련으로 제7기 박정희중대 훈련병 2명이 사망함.
• 8월1일. 박정희 소령으로 진급하나 8월말 무리한 훈련으로 제7기 박 정희중대 훈련
병 2명 사망으로 문책성 중대장직에서 직위해제당함.
•9월 이후부터 좌익계 이병주, 이재복, 최남근을 더욱 자주만남. (확실한 좌익이념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고자.) 신당동377-29. 이 재복의 아지트에서……
• 11월1일. 여순지구 공비토벌사령부 작전참모로 긴급발령받음. 조선경비사관학교를
잠시 떠남.
• 원용덕 토벌사령관. 김점곤소령. 박정희소령. 유양수소위. 이기건소 위. 통역 고정훈
대위.
• 하우스만대위의 조크.
• 11월11일. 박정희 토벌대 작전참모부에서 나와 육사교관부로 돌아오다.
•육사7기 졸업식 날 박정희 헌병들에게 체포당함. (정부 수립 후 첫 육사졸업이라 의
의가 큼.)
• 박정희가 잡혀간 곳은 옜 조선 신궁자리. (전'남산 중정.), 조사과장 육사2기 동기인
김득룡.
※ 이 후 고문당하는 것은 빠짐없이 상세히 수록할 것.
• 12월12일. 박정희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됨.
• 김득룡의 소견서.
각본, 감독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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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 김창룡이 박정희를 살려주자 상부에 건의 ……
• 국방부 전투정보과장으로 발령받았으나 근무 몇일 째 다시 체포되어
• 김용배, 박원석, 김도영, 이주일, 윤태일, 김용순, 박기병, 양찬우, 김 현옥. ……
• 극단적인 반공주의자 김창룡, 박정희에게 온갖 고문을 다 동원하고 전기고문까지 동
원하여 극악스럽게 죽도록 다룬다.
• 박정희를 구한 사람들 - 김창룡, 김안일, 백선엽, 리드대위, 하우스 만대위, 로버츠
준장(미 군사고문단장), 김득룡, 김점곤, 김영기, 고정 훈, 김정렬등 ……
• 1949년4월18일. 이응준 육참총장의 형 확인과정에서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는 박정
희.
• 5월10일. 국방부특명제34호로 박정희 전투정보과장직에서 파면당함.
• 5월26일. 최남근, 김종석, 오일균, 이재복은 총살처형 당한다.
• 박정희는 민간인 문관신세가 되며, 전투정보과 민간인 상황실장으로
• 차호성소령에게 복직추천서를 부탁. 채병덕 육참총장? 이용문대령.
• 8월20일하오7시 박정희 모친 백남의(77세)사망. 새 아내 이현숙과 장례를 치르러
동반하향.
• 이현숙은 박정희의 실상을 낱낱이 다 알게 된다. 본처와 딸이있다는 것을 숨겨온 사
실. 좌익으로 몰려죽은 형처럼 박정희도 그 혐의로 국방부의 파면을 받아 문관으로 있
다는 것 등등--• 전처인 김호남은 딸 재옥을 데리고 홀아비 한의사를 다라 부산으로 내려갔다는 것.
• 1950년2월6일. 홀로 상경한 이현숙은 배신감에 치를 떨며 박정희를 버리고 짐을 싸
서 집 도망을 쳐 버린다.
• 그러나 김호남은 부산에서 보살이 되어있었다.
• 6월25일. 드디어 한국전쟁인 육이오가 터져버린다.
• 고향에서 육본 경비전화를 통해 전해주는 구미파출소 순경에 의해 박정희는 소령으
로 복직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급거 상경하고 ……
각본, 감독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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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 남하를 위하여 한강으로 가나 철교는 이미 끊겨서 건널곳을 찾다가 자신을 고문했던
김창룡의 모습을 보고 권총을 찾으려고 허리춤에 손을 대지만 총은 차고 있지 않아서
……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 ……
• 수원에 있는 임시육군본부에서 다시 소령으로 복직.
• 장도영 정보국장의 보좌관으로 임명된다.
• 7월14일. 대전임시수도. 정일권 육참총장과 신성모 국방장관의 결재 하에 정보국 전
투정보과장에 복직. (숙군파동 1년6개월만임.)
• 대구거리 집차를 타고가다 길걷는 이현숙을 발견하고 불럿으나 이현 숙은 이내 도망
쳐버린다.
• 부산에서 대구사범 1년후배인 송재천을 만나 그를 소위로 임관시켜 자신의 보좌관
으로 취임시킨다.
• 이 송재천과 동향인 홍종한이 함께 술자리를 하고, 송재촌이 자신의 6촌여동생인 육
영수(당시26세, 전쟁전 옥천여중 교사. 박정희와 살 차이)를 맺어주려고 권한다.
• 7월 송재천이 육영수와 박정희를 만나게 하라는 육영수가의 허락을 받고 ……
• 7월13일. 영도다리근처 아이스케키집에서 첫 만남을 가진 후 ……
• 9월15일. 박정희는 중령으로 진급을 한다.
• 9월28일. 수복 후 대구 동성로 삼영식당에서 육영수와 약혼식.
• 10월 대전주둔군 9사단 참모장 발령.
• 12월12일. 대구 계산동성당에서 박정희와 육영수가 결혼식을 한다.
• 1951년1월4일. 국군이 다시 서울에서 퇴각.
• 1월17일. 인민군과 중공군이 서울을 다시 함락한다.
• 2월1일. 유엔총회가 중국을 침략자로 선언한다.
• 2월14일. 2개월만에 서울을 다시 수복.
• 4월11일. 해리트루먼대통령이 더글러스 맥아더장군의 권한을 정지한다.
각본, 감독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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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 4월14일. 박정희 대령으로 진급.
• 5월15일. 대구육군본부로 전보발령.
• 7월10일. 개성에서 휴전회담 개시.
• 9월6일. 매슈 리지웨이 유엔군사령관 정전회담장소를 판문점으로 제 의함.
• 9월8일. 일본과 48개국연합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조인. 제2차 세계대전이 완
전히 마무리됨.
• 9월20일. 이승만 중공군철수등 4개항의 6,25 휴전조건을 제시.
• 10월8일. 휴전회담장소로 판문점이 결정됨.
• 12월10일. 박정희 육본 작전교육국 차장발령.
• 이용문준장(정보국장), 구상시인, 소설가 김기진.
• 1952년1월18일. 대한민국 평화선언을 함.
• 2월1일.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창설.
• 2월2일. 박근혜 탄생.
• 1953년1월17일. 광주포병학교 입교(3개월코스)
• 5월9일. 제3군단 (군단장 강문봉) 포병장교단장.
• 이용문소장의 죽음 소식 전달받다.
•7월27일. 남과 북 휴전. 박정희는 서울의 전세방으로 이사를 한다.
• 8월15일. 부산으로 옮겼던 임시정부가 서울로 돌아옴.
• 11월25일. 박정희 드디어 준장으로 별을 단다.
※ 라디오뉴스로 저녘에 승진을 알게 된다.
이 기쁨으로 박근혜를 번적 안아든 박정희는 이렇게 말한다. "근혜야. 아비는 이 나라
가 절대로 외세에 침략 받지 않는 강한나라 로 만들고 싶다. 백성들이 자유롭고 풍요롭
고 행복하게 잘살 수 있 는 나라. 통일된 한민족의 자랑스러운 나라를 말이 데 이" -!!!
각본, 감독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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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제1편 "청년박정희"의 영화는 여기까지입니다.
제2편은 "대통령박정희"로 이어집니다.
각본, 감독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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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등장인물
1917년11월14. 박정희 출생.1살.~1953년11월25일.(37세까지.)
父 박성빈. 1872년생. (45세~
母 백남의. 1872년생. (48세~
장남 동희. 1894년생. 기혼출가.(23세~
차남 무희. 1898년생. 기혼출가.(19세~
(1923년 합의 이혼. 재취. 송씨부인이 삭바느질로 번 돈 으로 박정희 학비에 보탬.)
장녀 귀희. 1902년생. 기혼출가.(15세~
삼남 상희. 1906년생. (11세~
(박정희를 제외하고, 유일한 집안의 초등학교졸업자.)
사남 한생. 1910년생. (7세~
차녀 재희. 1912년생. (5세~
막내 정희. 1917년생. (1세~
(일본발음은 “복세이끼”)
신재현. 재희와 동갑인 마을 이웃
김재학. 박정희 앞집에 살았던 마을친구.
(1993년 구미지산초교교장 역임.)
구미보통학교.
박병철. 구미보통학교 정희의 2'4'5'학년 담임선생.
김득명. " 정희의 6'학년 담임선생.
한성도. " 동창생.
남윤수. " 동창생.
박재룡. " 동창생.
허동식. 대구친구.
김성곤. "
백남억. "
각본, 감독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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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1932년. 대구사범 심상과4기.
박관수. 고등관벼슬, 조선인선생.
히라야다다시. 교장선생.
현준혁. 대구사범 선생.
안인식. 대구사범 선생.
김용하. 대구사범 선생.
김영기. 대구사범 선생.
염정권. 대구사범 선생.
구자균. 대구사범 선생.
하리모토스네지. 惡교감선생.
신현길. 대구사범 선생.
박관수. 대구사범 선생.
다께야마. 대구사범 선생.
도리카이이쿠마. 후임교장(박정희 3학년 때.)
※ 첫사랑 이정옥. 1934.7.20.
이시마스데이키. 대구사범 선생.
오카모도히로시. 대구사범 선생.
후지하라만리. 대구사범 선생.
사쿠마교도. 대구사범 선생.
이코마다이고로. 대구사범 선생.
마에소노세이이치. 대구사범 선생.
고토이사무. 대구사범 교련교관.
고토요이치. 惡선생.
아리가와슈이치. (소좌) 대구사범 교련배속장교.
기시요네사쿠. 대구사범 선생.
1936. 5학년 졸업반 2학기 때.
※ 김호남과 결혼. (김호남의 부모 및 형제와 동리사람들.)
미나미지로. 조선총독.
각본, 감독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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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1기생 - 이병주. 오원석. 김기돈. 박정서. 황정. 이응수. 한정돌.
한석동. 송남헌. 김상인. 이쾌대. 이원식. 안동수. 나경민.
2기생 3기생 - 진두현. 박태숙. 김의찬. 서창섭. 김덕언. 조좌로. 배숙.
이혁기. 강재영.
4기생 - (73명) 왕학수. 이영원. 홍종한. 조증출. 권상하. 김재봉.
장점복. 도석재. 서정귀. 김을수. 박의덕. 이재완. 임복암.
이건복. 오이시다모스. 금경연. 김종택. 김윤길. 엄한준.
신현서. 이태규. 도상운. 이성혈. 최승억. 이정찬. 윤치두.
이성조. 김영희. 이득우. 백수영(일본인). 우시로노리모토.
김종길. 김기오. 최두문. 백일성. 최무학. 김제하. 김일선.
최덕해. 신성재. 이병주. 김상인. 김병희. 신현소. 박영호.
이성조. 박동일. 유만식. 임종섭. 최종국. 서석은. 박의덕.
이득우. 엄한준. 황용주. 후시노히코지로. 김국진. 황보균.
두용규. 석광수. 주재정. (대구사범졸업 70명)
5기생 - 남광우. 송재천. 이준무. 이재철. 신상묵. 진장선.
6기생 - 신현국. 강영모.
7기생 - 안병익. 강응구. 최영복.
8기생 - 정상민. 우성재. 양문석.
모리가네이치. 경상북도 내무부 학무과 장학사.
박상희의 인맥 - 김원룡, 노정일, 손기체, 이육, 황기원, 이활, 이선장,
정학선, 이기석, 유상묵, 박명줄, 박영발, 한일청, 박관영,
문상직, 서영로, 황태성. 등 ---
각본, 감독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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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문경공립보통학교(1938년에, "문경서부공립심상소학교"로 개칭.)
조영익. 신북 간이학교 1인교사.
야나자와스미에. 선생.
유중웅. 교감.
조익영. 선생.
박옥희. 선생.
아리마긴호. 교장선생.
스즈키시치로. 선생.
오오기시쇼오. 선생.
사마다히코이치. 선생.
소사. 학교 소사.
데라도유다카. 경상북도 학무과 장학사.
석이. 정희반의 학생.
석이 동생들 석이 할머니.
박정희반의 학생들 -
강재호. 만주군 상위.
하숙집(문경보통학교 인근)
김순아. 주인.
임창발. 주인아들.
허동식. 문경군청농회 기사, 하숙생.
만주군관학교(만주육군사관학교)제2기.
알가와슈이치. 만주군대좌.
강재호. 만주군 상위.
이병주. 이상진. 박정희의 만군동기생들.
중국인 점쟁이.
정일권 헌병중위.
간노히로시의 국제정세 예견.
각본, 감독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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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만주군관학교 합격자(12명)
박정희(창씨개명)=다카기마사오. 이병주. 이한림. 이재기. 김원기.
안영길. 강창선. 이섭준. 김재풍. 김묵. 이상진.
군관학교1기생 - 이주일. 박임항. 최창인. 윤태일. 김동하. 김영택.
이기건. 방원철. 김민규.
군관학교4기생 - 강문봉.
군관학교5기생 - 김석범. 정일권(창씨개명)=나카지마잇켄. 김백일.
송석하. 신현준. 최경만.
군관학교7기생 - 최남근. 백선엽.
만군시절 인맥.
정일권. 헌병중위.
김일환. 제4군관구 통역.
원용덕. 군의관.
강문봉.
최수종. 후배.
강태민. 후배.
최남근.
박기병. 하사.
홍사익. 중장.
간노히로시. 교관.
난구모신이치로. 중장. 교관.
오카미쇼이코.
고야마.
유보선.
장금당.
1942.3. 만군예과 수석졸업 후 견습군관 6개월 다이스키. (장교수습근무).
시바다기요시.
각본, 감독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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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일본육군사관학교 57기. 1942년10월.
입교전 - 왕학수. 김종길. 홍종한. 황용주. 백일성.
조선인 동기 - 이한림. 이섭준. 김재풍.
중국인 동기 - 유보선. 장금당. 장문선 외 30여명.
일본계 동기 - 146명.
우시지마미스루. 중장. 일본육사교장.
일본육사로 온 만주군관학교1기생출신 56기 7명 - 이주일 박임항.
최창언. 김민규. 최창윤. 조영원. 김영택. 이형근. 최창식.
김종석. 최정근.
영친왕의 계림회. 박정희와 예과 본과생 동포.
김영수. 김호량. 정상수.
1944년4월22일 일본육군사관학교 58기 입학.
정래혁. 박원석. 신상철. 안광수. 한용현. 최복수.
만주군관4기출신 - 최주종. 강태민.
만주군 인맥 1944~1945.8.15.까지.
이섭준. 김재풍. 혁모협(만주군 중장). 시모노후쿠다로 상위. 이주일중위. 박원철
중위. 신현준상위. 당제영상교.
1945년8월15일. 만주군 중위시절 조국해방.
신경비행대 군교 1년선배 최창륜, 문용채 새 광복군.
최용덕. 중국군 소장출신. 총사령관
이성가. 연락책임자
윤경구. 정필선.
각본, 감독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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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1945 - 고향으로 귀향 후.
대구 사설군사조직의 - 하재팔. 표무원. 최남근. 김영환.
허동식. 박재룡. 백남억 - 황태성, 백일성,
셋째형수조카 딸 영옥17세' 계옥15세'
이재복, 이응수.
조선경비사관학교(전 육군사관학교) 제2기.
한웅진. 송호성. 이규동. 석주암. 이효. 주격. 윤태일. 표무원. 강태무.
서억균. 권오태. 현석호. 현석주. 이규학. 이동화. 김재규. 이치업.
조병건. 오일균. 신재식. 문형태. 한신. 심흥선. 이세호.
(회상cut - 최남근. 이병주. 황태성. 백일성. 최무학. 하재팔. 표무원.
서억균.) 이주일. 신현준. 김성곤.
1947.3월 소위 때.
이병주. 이상진. 김점곤중위.
최남근소령. 하재팔소위.
1947.9.27. 대위승진.
한신. 김득모. 한웅진. 송석하. 표무원. 강태무. 이병주. 이상진.
이재복(남로당 군사책).
12월 이현숙 내연의 처를 만남.
이효, 이효의 아내.
신당동 이재복. 이병주. 최남근.
제1중대장시절(5기생제1중대장.)
김백일중령 교장. 최창언소령 생도대장. 장도영소령 행정처장.
5기생도 - 김재춘. 문재준. 박기석. 박춘식. 박치옥. 송찬호. 이원엽.
채명신. 최재명. 허준. 강창선. 황택림. 김학림. 정종근. 김동빈. 김희덕.
이병주. 이상진.
7기생도 - 민영식. 서청하. 이주일. 김영택. 김묵. 정래혁. 안광수.
최무학의 조카 최숙희. 이재복. 조병건. 오일균. 이수진. 김종석.
각본, 감독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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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여순지구 공비토벌사령부 작전참모 발령시.
원용덕 토벌사령관. 김점곤소령. 유양수소위. 이기건소위. 하우스만대위. 고정운
통역관 대위.
남산 - 김득룡. 김창룡.
서대문형무소 수감자 - 김용배, 박원석, 김도영, 이주일, 윤태일,
김용순, 박기범, 양찬우, 김현옥.
박정희를 구한사람들 - 김창룡, 김안일, 백선엽, 리드대위,
하우스만대위, 로버츠준장(미 군사고문단장), 김득룡, 김점곤,
김영기, 고정훈, 김정렬.
1949. 2. 28. 군법회의.
이응준. 육참총장.
민간인 군속 시절 - 차호성소령, 채병덕 육참총장, 이용문대령.
모친 백남의 49.8.20.별세 부음받고 하향시이현숙.
1950.7.14. 육군소령으로 군 복귀
정일권 육참총장, 신성모 국방장관.
김창룡. 차호성. 이현숙. 채병덕 육참총장. 이용문대령.
9월 중령으로 진급. 육영수. 12,12. 육영수와 대구에서 결혼.
1951.4.15. 대령으로 진급.
이용문 준장. 구상 시인. 김기진 소설가.
1952년.2월2일. 막 탄생한 박근혜.
1953년.5월9일. 강문봉 제3군단 군단장.
외" 기타 보조출연자 연인원 10,000명 이상.
각본, 감독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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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청년 박정희
대표회장
후원회사
제작총지휘
기획담당
대표이사
제작담당
제작회사
고증위원
각본‘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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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상무
필름구분
개봉예정
제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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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유광수
민 경 춘 010-3976-9009.
정병화
주식회사 경춘
金 聖 秀 (감독 경력사항 참조는
cafe.naver.com/seoungsoofil)
노영화
35m/m C/L
2015년
강경모, 박정원, 김상우,
탶>
제작일정
제작예산
운영기획
수익배분
:
: 200억원 미만
:
:
시나리오는 아직 작성치 아니하였으며 필요 시 작성하여 별첨합니다.
본편 1편은 “청년 박정희”편이고 –
제2편은 “대통령 박정희”로 제작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각본, 감독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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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
각본, 감독 김성수
오도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매도된 인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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